삶과 예술의 사이에서
광화문과 독립문 사이에 딜쿠샤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가진 건축물이 있다. 희망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딜쿠샤는 1923년 기자 겸 금광업자인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한국에 자리를 잡으며 면적264m2에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지은 서양식 주택이다. 1943년 3.1운동선언과 일본의 만행을 외국에 전파한 혐의로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 당하기 전까지 앨버트 테일러 가족이 거주하였다. 추방 후, 주인을 잃게 된 딜쿠샤는 한국전쟁 후 갈 곳없는 이들의 안식처로 사용되었는데, 사람이 많이 거주할 땐 15가구가 공간을 나누어 살아오다 현재는 9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실정법상 불법거주의 형태였지만, 60-70년대 교환가치를 가진 공간으로 거주권을 양도하며 40-50년을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2006년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이 한국에 돌아와 딜쿠샤의 존재와 역사가 밝혀지면서 방치되고 불법 점유된 근대건축에 불과하였던 딜쿠샤는 갑자기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등록문화재 등록 수순을 밟으며 거주자와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복원이 될 경우,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1930년의 딜쿠샤로 되돌려 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법점유 상태인 거주자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 받게 되었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은 문화재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적절한 조치와 적합한 환경을 마련하여 문화재의 손상된, 미적 역사적 가치를 최소한의 희생을 통해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말한다.[1] 최소한의 희생이라는 추상적인 말이 딜쿠샤에서는 명확해진다. 불법거주자들을 내보내고 불법적으로 개축된 공간은 삭제되고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시점으로 딜쿠샤를 되돌려 봉인하고,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 근대건축물로써 기념비화 하는 것이다. 근대 건축의 기념비화는 상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과거를 환기시키며 도시 환경을 동질화 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신자유주의의 과정을 거치며, 공간의 상품화는 정치/경제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데, 도시 풍경의 동질화를 통해 주변 환경 사이의 차이를 줄이면서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올리게 된다. 즉, 보존하려는 의지가 모든 차이의 제거를 통해 상품으로써의 공간을 생산해 내는 모순을 드러낸다.
딜쿠샤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근대건축물 중 복원과정을 거친 문화재는 거대한 기억의 순간은 봉인되어 남겨지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사라져 숨쉴 틈 없는 단단한 기념비가 된다. 하지만 딜쿠샤는 역사의 기억에서 한발 물러선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근대의 기억과 거주자의 삶이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면서 거주자의 필요에 의해 공간의 변화가 눈에 띄는 몇 안 되는 장소로 존재한다. 봉인된 역사의 건물이 아니라,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그 안에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간이 이주자들의 삶으로 편입되면서 입주자들에 의해 자가 증식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예를 들어, 원래는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었지만 세대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화장실을 새로 설치한다 던지, 2층 테라스 공간에 벽을 쌓고 새로운 거주 공간을 생성해 낸다든지, 외양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거주자의 공간은 일상적인 한국가정집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즉,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흐름이 아닌 거주자들의 삶을 반영하는 변화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말하는 도시에 관한 권리에서 전유의 권리와 같이 어떤 집단의 필요와 잠재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연적 공간이 개조되면, 그 집단은 그 공간을 전유했다고 여겼다. 그는 공간을 전유하는 행동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분명, 예술이란 멀리 있는 것도, 거대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삶이 그러하듯 예술 또한, 자신의 존재를 가득 채우는 것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누군가 딜쿠샤를 복원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 망가진 채 방치하여 근대유산이 훼손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이냐고 묻는 다면 나는 반대로 그들에게 파괴를 통한 복원이 되어야 할 이유와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기 전의 40년의 기억은 사라질 만한 최소한의 희생으로 보아야만 하는지 되묻고 싶다.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의 개념이 물적 가치에서 정신적 가치로 변화하면서 문화재 복원에도 윤리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기념비적 건축과 비기념비적 건축 사이에 존재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 마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인가?
-----------------------------------------------------------------------------------------------------------------------
[1].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_김주삼_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