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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Go-Round>

_이의록

 

아득한 우주는 보이지 않기에 매력적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은 우리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만들어졌다. 볼 수 없고, 가닿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침묵으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낸다. 우주를 본다는 것은 과거를 보는 것과 같다. 우주에서 오는 빛은 오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도달하기에 그만큼 오래전에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2019년도에 발표된 최초의 블랙홀 이미지는 5,500만 년 전에 출발한 M87 은하 중심부의 빛을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이다. 5,500만 년 전은 상상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영겁의 시간을 지나 도달한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관측 천문학을 입구로 이미지의 본질과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간다. 시작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이유를 자주 잊어버리고 만다. A부터 Z까지 계획을 세워 진행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가다 보면 내가 원하던 상을 만나게 될(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건 천문학자와의 만남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연구자들이 쓰는 장비일 수도 있으며, 거기서 파생된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이전에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느릴 수 있겠지만, 원하는 상의 근사치에 도달하는 것은 시행착오와 시대착오의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Merry-Go-Round>(2020)는 전파망원경의 관측 과정을 따라간다. 전파망원경이 생소할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광학망원경과 달리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영역의 빛을 보는 망원경이다. 전파를 수신하는 안테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여러 전파 망원경을 연결하여 관측할 수 있는 전파간섭계 시스템을 이용하면 지구만 한 구경의 망원경과 같은 분해능(해상력)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EHT 프로젝트는 6대륙에 있는 8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하여 한라산 백록담에서 백두산 천지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셀 수 있는 정도의 분해능으로 5,500만 광년 거리의 블랙홀을 관측한 것이다. 관측지점에서 오는 전파를 받아들이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미지가 추출되는 과정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결과로 나온 하나의 이미지보다는 그 이미지 주변에 회전하고 있는 시간, 장비, 사람, 태도이다. 이미지는 강력한 중력장을 가진 블랙홀과 같이 주변에 있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인다. 이미지가 흡수한 것들을 분류하고 추출하는 수식을 만드는 것은 작업으로 이미지의 성질을 탐구하는 방향과 닮아있다.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는 눈 앞에 펼쳐진 기하학적 세계가 아닌 대수적 세계에 속한다. 모양에 앞서 기호화된 세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시각 세포의 인지 방식과 비슷하며 디지털의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와도 닮아있다. 전파천문학에서는 주파수의 진폭이 가진 정보 값에서 이미지를 추출한다. 거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실제라고 생각되는 이미지를 추출하는 과정이다. 본 적도 갈 수도 없는 곳의 실제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푸리에 역변환1)을 해야 한다. 우주에서 온 정보 값을 얻을 때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코드)를 넣고 처리 과정에서 알고 있던 데이터를 빼내면 실제 우주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미지 처리 과정에서 출현한 실제 이미지는 아무 말 없는 이미지가 스스로 말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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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 FT)은 시간에 대한 함수(혹은 신호)를 구성하고 있는 주파수 성분으로 분해 하는 작업이다. 푸리에 역변환은 원래 함수를 복원하기 위해서 모든 구성주파수 성분을 조합하는 변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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